주일설교

2025년 8월17일 주일설교: “연합의 능력,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삶”

작성자 세빛교회 댓글 0건 조회 116회 작성일 25-08-17 09:01
설교제목 : “연합의 능력,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삶”

본문: 시편133편1~3절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서론: 연합의 가치와 성경적 근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연합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삶'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 공동체에서 연합은 단순히 좋은 덕목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이자 그분의 뜻을 이루는 핵심적인 열쇠입니다.
우리가 왜 연합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은 명확한 이유와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시편 133편은 다윗이 정말 먼 훗날을 바라보면서 쓴 시입니다. 그는 2천 년, 아니 3천 년 후에 있을 일들을 바라보며, 미래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백성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합니다. 그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하며, 형제가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를 묘사합니다. 여기서 '선하다'는 히브리어 '토브(tov)'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선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을 때 사용된 단어와 같습니다.
다윗은 형제들이 연합하여 하나 되는 모습을 보면서 "와, 저 모습이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구나"라고 감탄했습니다. 이것은 연합이 단순히 좋은 것을 넘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연합하는 공동체, 하나 되는 교회는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연합의 비밀을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본론 1: 연합에 임하는 두 가지 기름 부으심
성경은 연합에 부어지는 놀라운 기름 부으심을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합니다. 이 두 가지 비유는 우리에게 연합이 가져오는 영적 축복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려줍니다.
첫째, 아론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시편 133편 2절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라고 말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기름 부음은 왕이나 제사장을 세울 때 거룩하게 구별하는 의식이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 아론에게 부어진 기름은 머리에서부터 수염과 옷깃까지 흘러내렸습니다. 이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 부으심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때, 그분의 능력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온몸인 교회 공동체에 흘러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단순히 개인적인 은혜를 넘어, 공동체 전체에 부어지는 놀라운 힘입니다.
이 능력은 죽은 자를 살리고, 낙심된 자에게 기쁨과 희망을 줍니다. 이 기름 부으심은 리더십이 연합하면 팀장들에게, 팀장들이 연합하면 팀원들에게, 팀원들이 똘똘 뭉치면 성도들에게 흘러갑니다. 마치 댐의 물이 수로를 따라 흘러가듯,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공동체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 기름 부으심은 특히 낙심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하나님만을 갈망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연합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공동체는 연합의 능력이 강하고, 잘 뭉치며, 하나가 됩니다.
둘째, 헐몬의 이슬입니다. 시편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 산들에 내림 같도다"라고 말합니다. 헐몬 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가장 높은 산으로, 연중 만년설이 쌓여 있습니다. 이 만년설이 녹아 증발하여 이슬로 변하면, 건조한 이스라엘 남쪽 지역인 시온 산들까지 내려와 온 땅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연합할 때, 마치 온 시온 땅에 하나님의 이슬, 즉 성령의 충만함과 하늘의 생명수가 흘러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연합할 때, 메마른 땅에 생명수가 흐르듯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 영적 풍요로움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합하는 곳에 복을 명하시는데, 그 복은 바로 영생입니다.

본론 2: 연합은 한 몸을 이루는 것
연합은 단순히 모이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한 몸과 같으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한 몸이며, 여러 지체가 있지만 하나로 유기체처럼 움직일 때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한 몸의 지체들은 귀함의 차이가 없습니다. 눈이 아무리 중요해도 발이 없으면 걸을 수 없고, 손이 아무리 중요해도 귀가 없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 함께하는 고통과 즐거움: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합니다. 이는 영적인 하나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가락 끝에 작은 가시가 찔려도 온몸이 함께 아파하는 것처럼, 한 지체가 아프면 다 같이 아파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무감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옆에 있는 형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 서로 감싸는 자세: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고 해서 "너는 쓸모없다"고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손으로 감싸주고 입으로 아픔을 나눕니다. 이것이 한 몸 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누가 힘들 때 같이 힘들어하고 아파해야 하며, 서로를 돕고 감싸주는 것이 한 몸으로서의 책임입니다. 교회는 서로의 약점을 비난하고 헐뜯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약한 부분을 감싸 안아주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 나눔과 희생: 초대교회는 부흥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나눔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5절에 보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정을 내놓고 서로 나누었습니다. 이처럼 재정적으로 어려운 지체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채워주는 것이 한 몸 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과 사랑이 몸으로 흘러내려와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모두 다 어려운 사람이 없었다고 말할 만큼 서로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론 3: 힘써야 하는 연합과 하나 됨의 증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나눈 연합의 축복과 능력이 저절로 우리 삶에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은 "평안을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이 구절은 연합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힘쓰는' 일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 됨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노력해야 하는 사명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힘쓸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절에서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바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 모든 겸손과 온유: 겸손은 무엇일까요? 나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누가 더 잘나고, 누가 더 귀하고, 누가 더 많이 배웠고, 누가 더 가진 것이 많은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골고루 주신 은혜와 달란트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
온유는 부드러움과 같은 말입니다. 힘이 없어서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절제하는 부드러움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겸손하고 온유해질 때, 서로를 깎아내리고 상처 주는 대신 세워주고 배려할 수 있습니다.
• 오래 참음과 사랑: 우리의 공동체 생활은 때때로 갈등과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그저 참고 견디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사랑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그 사람을 품어주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용납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교회는 밖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을 내쫓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함께 고통을 당하며 치유하는 한 몸의 공동체입니다.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비판 대신 격려를 아끼지 않을 때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 됨을 통한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왜 연합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연합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핵심은 바로 '하나 됨'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하나 되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도지나 화려한 찬양, 웅장한 예배 건물보다 더 강력한 증거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됨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을 찾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그 사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교회가, 즉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며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세상은 교회를 보고 "아,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는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우리의 구세주이시구나!"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갈라지는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똑같네', '교회는 사랑이 없네'라는 말을 듣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생각과 뜻인 용서, 사랑, 용납을 몸소 실천할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하나 됨은 진정한 부흥으로 이어집니다. 초대교회는 나눔을 통해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이 더해지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내 것은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다 내놓고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들의 하나됨과 나눔의 삶이 바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고 나눌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기름 부으시고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 됨은 세상으로 흘러가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의 삶 속에서 연합을 힘써 지키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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